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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3일 오늘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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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8-10-23 08:19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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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해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복음 : 루카 12,35-38

 

 

깨어있음이란 같이 있는 것

 

 

 

영화 ‘트루먼 쇼’(1998)에서 주인공은 자신도 모른 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생중계 되며 살아가는

행복하지만 실제론 불행한 트루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루먼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한 여자 ‘실비아’로부터

이 모든 것은 다 가짜라는 말을 듣습니다.

사람도 가짜고 세상도 가짜고 기억도 가짜라는 것입니다.

실비아는 이 말을 남기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끌려 나갑니다.

 

 

 

시간은 그렇게 흐릅니다.

그녀가 한 말은 트루먼에게서 잊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녀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잡지에 나온 여러 여자들의 얼굴을

조각조각 찢어가며 자신의 기억의 퍼즐을 맞추어갑니다.

그녀의 얼굴을 모자이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자신에게 한 말을 잊지 않습니다.

 

결국 그렇게 끊임없이 기억하려 했던 노력이 트루먼에게 참 인생을 가져다줍니다.

실비아는 보이지 않았지만 트루먼은 실비아를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비아와 함께 있었고 실비아의 말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깨어있음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깨어있음에 대해 말씀해주시는데

트루먼이 실비아를 잊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이 바로 깨어있으려는 노력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잠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함께 계신 것처럼 살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셨지만 마치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은 믿음과 직결됩니다.

언제라도 오실 수 있는 분이라면 항상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그건 잠에 빠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항상 깨어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할 때는 그래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때는 그분께서 함께 계심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운전할 때 화가 나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남을 험담하게도 됩니다.

마치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으려면 항상 기도해야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기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좋은 방법은 기도를 일상으로 끌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호흡입니다.

기도할 때 호흡에 집중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기억하려 노력하였다면

일상에서도 그렇게 의식적으로 호흡만 해도 주님께서 함께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하루에 50번 정도는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주님의 현존을

되살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끊임없이 기억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잠에 빠집니다.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이 잠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잠에 빠지는 것인데

수시로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기도를 통해 훈련이 되어 있어야합니다.

평소에 운동을 해야 일상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듯,

평소에 주님의 현존을 떠올리며 대화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일상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호흡을 내가 의식하면 내 호흡을 내가 조절할 수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호흡이 됩니다.

자동적으로 호흡이 된다는 말은 잠자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잠을 잘 때도 꿈을 꾸고 호흡을 합니다.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면

나 자신을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훈련을 기도 때 하고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호흡을 몇 번 하면

기도할 때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던 것처럼

일상에서도 그렇게 믿어집니다.

그러면 항상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생각을 끊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음이 깨어있음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으며 주님을 바라볼 때가 깨어있을 때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가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깨어있다 주님을 맞이한다면 행복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아에 사로잡혀 살면 불행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물속으로 빠져들면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자아는 세상에 대한 욕구를 집어넣어 자신의 주인을 그 욕구로 익사시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자존심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항상 깨어있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있는 것이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억할 때마다 항상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이런 삶이 기도를 일상으로 끌고 올 때 가능해집니다.

깨어있을 때 가능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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