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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9일 오늘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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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8-10-29 08:19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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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해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3,10-1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은 여인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 13, 12)

 

예수님께서 오늘 새로운 창조를 이루십니다. 당신이 주는 해방을 맛보게 하십니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똑바로 서서 걷게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치유를 간청하거나 믿음을 고백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 안수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같은 복음 6장에 나오는 오른 손 오그라든 환자와 같으며,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 나오는 ‘3년 동안 열매를 달지 못한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죽음과 어둠의 권세에 묶여있는 아담적 존재의 표상이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기 꺾이고 풀 죽어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시고 생명을 북돋아 주십니다(루카 13, 6-9).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대한 분노를 안식일에 몰려든 군중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율법위반으로 단죄합니다. <신명기>(5, 12-15) <탈출기>(20, 8-18)에 따라 안식일에 노동할 수 없다는 구실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한 일은 치유를 받았을 뿐, 노동을 한 것은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활동도 말씀안수 밖에 없었고. 치유자체는 하느님의 권능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회당장은 치유를 하느님이 이루신 해방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 노동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치유를 하셨지만, 회당장은 그것을 율법위반으로 간주했습니다.

사실, 안식일의 정신은 <탈출기>(20, 8-11)에 따르면, 선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멈추고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안식일은 장차 있을 휴식의 표상으로, 죄의 짐을 지지 말고 선행을 쌓아 미래의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회당장은 병마에 묶여있던 여인처럼, 문자(율법)에 묶여있고 질투(어둠과 죽음)에 묶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가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비난하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 그가 비난하는 진짜 이유는 예수님께서 찬양받는 것에 대한 질투였습니다. 그는 질투에 묶여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선자라고 하시며 질책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루카 13,16)

 

이처럼, 유대인들이 안식일이더라도 가축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날인 안식일에 아브라함의 병든 딸을 고쳐주시는 것을 당연한 일,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셨습니다. 생명을 바로 세우고 살리는 일,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의 정신이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통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실현하시고,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미 부활을 입은 우리도 허리 펴진 여인처럼, 우리 주님 하느님을 찬양(루카 13, 13)해야 할 일입니다. 이를 본 군중처럼,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루카 13, 17)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이영근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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