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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3일 오늘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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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8-11-23 08:53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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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루카 19, 45-48(연중 33주 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맨 먼저 찾아가신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셨습니다. 그곳은 당신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잃은 아들을 찾아 온 부모에게 저는 저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 49)라고 했던 바로 그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면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루카 19, 46)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당신의 집으로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당신이 머무는 곳이요,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성전은 당신과 만나고 당신을 대면하고 마주하는 기도의 집이요, 성전에 있다는 것은 당신 면전에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성전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강도의 소굴이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당시에, 성전이 장사와 환전이 행해지는 불결하고 부정한 곳이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결국,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재물과 탐욕의 우상을 만나는 장소로 변해버렸기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새롭게 정화하시는 일을 맨 먼저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성당에 오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성당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시고 어떻게 하실까?

대체, 오늘 우리 성당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느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예수님의 성전정화는 교회개혁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교회가 항상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드러내고 주님의 생명과 사랑에 응답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곧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는 은총의 물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쇄신하는 표상이 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쪼개시고, 성전의 장막을 두 갈래로 가르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성전주의에 갇히지 않으시는 당신의 몸을 성전으로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느님 현존의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잘 깨우쳐줍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 16)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품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질그릇 같은 깨지기 쉬운 몸이라 할지라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값진 보화를 간직한 거룩한 몸인 것입니다. 당신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현존하시며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 안에 계시고 활동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주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이 강도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냄이란 우리 몸을 잘 보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몸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내어주는 것을 말한다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 1)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때, 곧 우리 자신을 타인과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우리 자신은 기도의 집이 되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이영근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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