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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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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9-05-14 10:20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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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요한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가장 큰 죄는 ‘기분 나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 구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쁜 기분은 전염이 됩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기분 나쁜 상태로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 옆에 있는 자신 역시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여기서 “하하하” 하고 혼자 웃으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너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니?”

그러나 기분 좋은 상태로 있으면 이 역시도 전염이 됩니다.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밝은 분위기로 인해서 내 마음이 좋아진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지금 내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따라서 다른 이들 역시 좋은 기분으로도 또 나쁜 기분으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큰 죄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바람이 저절로 나는 ‘좋은 기분’을 만들 수가 있을까요? 바로 사랑이 있을 때입니다. 제가 요즘에 큰 조카의 아들, 그러니까 저의 손주만 보면 기분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기 역시 웃으면서 신나합니다. 아기 역시 사랑받고 있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을 주는 데에서 우리는 좋은 기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늘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받으려는 사랑에만 주목하면서 받은 사랑이 없다면서 사랑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절대로 기분이 좋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세상에 가장 큰 죄를 짓는 모습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사랑을 주님께서는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사랑으로 이 세상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사랑으로 좋은 기분에서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랑을 하라는 것이었을까요?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이득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이유 있는 사랑도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심지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큰 사랑까지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예쁘게 봐주는 사랑, 좋게 생각해주는 사랑, 참아주는 사랑, 나중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에 머물러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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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배신자 유다의 자리를 메우려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뽑힌 인물이다(사도 1,21-26 참조).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이로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루카 10,1-2 참조)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마티아 사도의 활동과 죽음에 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예루살렘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방인 지역,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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