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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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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9-06-11 09:23 조회1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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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태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제1독서에서 들은 것처럼, 성 바르나바는 비록 열두 사도에 들지는 않았지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사도로서 인정을 받은 분입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선교사였던 성인은 바오로 사도와 마르코와 함께 복음을 선포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분입니다.
그런 성인을 기념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과 동일한 내용을 선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곧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가 이제 당시 사람들 사이에 이미 실현되었음을 선포하라는

 

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욕심이든, 명성이든 어떠한 욕심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원칙은 사도 시대에 그대로 지켜졌고, 자신들의 이익을 찾지 않는 이런 자세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이어서,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고, 여행 보따리, 여벌 옷, 신발이나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하는 자세를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신발과 지팡이처럼 예수님 당시에 여행을 할 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포기하라는 말씀대로,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일지라도 복음을 선포하고자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바르나바 사도를 기념하면서, 성인의 전구를 청하고, 우리도 복음을 안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바르나바 성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가톨릭 굿 뉴-스 성인록 ▷

성인명: 바르나바 (Barnabas)
축일: 6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
같은이름: 바르나바스

♧♧♧♧ T ♧♧♧♧ T ♧♧♧♧
성인설명 :

•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은 성 바르나바는 비록 12사도에 들지는 않았지만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으로 요셉(Josephus)이라 하였는데,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
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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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바오로(Paulus, 6월 29일)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했고,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기도 하였다(사도 11,22 이하).
그리고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로부터 그곳으로 데려왔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안티오키아의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세 사람이 키프로스와 페르게 그리고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선교여행 길에 올랐을 때,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자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은 리카오니아 지방의 이코니온과 리스트라로 갔으며,
여기서 그들은 신들로 인정받았으나 곧 돌 세례를 받게 되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

 

유대인 예식 준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그들의 활동 보고를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길에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다른 방문 길에 오르려 하였으나,
팜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로 바오로가 요한 마르코를 반대하자 그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나,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성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Roma)에서 전교하였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61년경에 살라미스에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위경인 바르나바의 편지가 그에게 헌정되었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70년과 10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나바의 복음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듯하고,
바르나바의 행전은 요한 마르코의 업적일 것이다.
 

 

9497e97b242d27ecdeb01622a44d9eeb_1560212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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