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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따스음악학교의 교장신부님과 후원회원님들이 글로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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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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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9-07-11 09:38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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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태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쥐를 생후 첫 몇 주 동안 하루에 15분씩 만져주는 것을 반복하면 만져주지 않는 쥐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잘 이겨낸다는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즉, 하루 15분 정도 만져주는 스킨십만으로도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무기력한 모습을 더 적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한 생애 초기에 보살핌을 받은 쥐들은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노화가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잘 극복한다고 하더군요. 과거의 보살핌에 대한 경험이 미래에 사건에 대한 대처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우리 사람은 어떨까요?”라는 의문을 던지게 되면 대부분이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답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분은 자신이 어렸을 때 이러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현재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보살핌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분명히 큽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 보살핌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분의 경우는 어렸을 때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말씀하시고, 또 어떤 분은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학대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사랑을 많이 받았다면서 기쁘게 사시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지금의 모습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면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서 병자들을 고쳐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의 이유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말씀으로 정리해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먼저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느끼지 못할까요? 바로 ‘나’만을 강조하면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나’라는 단어보다는 ‘너’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의 고통보다도 너의 고통에 끝까지 함께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너’의 대상인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인 ‘나’를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큰 사랑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기억하며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완성하라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저 주어야 합니다.
 
 
베네딕도 아빠스 성인은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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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480-560년경)는

이탈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진실로 하느님을 찾고자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비아꼬 동굴에서

3년 동안 은수생활을 한 후,

몬떼까시노에 수도원을 세우고,

거기서 수도규칙서(Regula Benedicti : RB)를 저술하였다.

이 규칙서는 이후

서방 수도승생활의 초석이 되었다

 

 

성 베네딕도는

로마에서 수학하던 중

도시생활의 혼란과 방종에 환멸을 느끼고

광야로 갔던

서방 수도자의 아버지이다.

 

성인은 처음에

엔피데로 가서 은수생활을 시작하다가

수비야코에 정착했는데

그는 3년 동안을 동굴에서 지내면서

로마누스라는 또 다른 은수자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면서부터

비코바로의 수도자 공동체의

원장으로 초대되었지만

엄격한 규칙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려 함으로

수비야코로 돌아왔다.

 

그후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므로써

수비야코는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로 변하였다.

 

베네딕도는 525년경에

몬테 카시노에 정착함으로써

이곳을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게 만든 것이다.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와

같은 무덤에 묻히기까지

거기서 살았다고 합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2월10일.

 

이즈음에 그는

단일 수도원 공동체를 조직화하고,

올바른 금욕생활과 기도,

공부, 일, 원장의 역할을 규정하는

명한 회칙을 기술하였다.

 

이 규칙서는

순종과 정주생활

그리고 신심을 크게 강조했으며,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성무일과를 안배하였다.

 

이것이 서방교회 수도생활의

기초가 된 것이다.

 

 

한편 베네딕도는

국왕과 교황의 고문역을 담당했으며,

폐허화된 롬바르디를 재건하는데 헌신하던 중에

547년 3월 21일 몬테 카시노에서 선종한 것이다.

 

성 베네딕도는 서품을 받지는 않았으며,

그의 "수도규칙"은 외곬이고

침착 정직한 성품을 보여준다.

 

8세기 말 부터 여러 지방에서는

7월 11일에 그 축일을 기념해 왔다.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성인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는데

그의 문장은 깨어진 컵, 까마귀, 종

그리고 아빠스 문장과 숲이다.

 

성인은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일어서서 기도하시면서 선종하셨다

 

 

성 베네딕도 아빠스의 [수도 규칙]에서

(Prologus, 4-22; cap. 72,1-12 CSEL 72,2-5.162-163)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다

 

 

우선 무슨 선행을 시작하든지

그것을 마치기 위해

주님께 간절한 기도로써 청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악행 때문에

한 번이라도 상심하시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안에 주어진 선에 따라 그분을 섬겨,

 

아버지께서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에게서 상속권을 박탈할 뿐 아니라

우리 악행때문에 격분한 무서운 주인으로서

당신 영광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극악한 종들에게

영벌을 주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하신 성서의 말씀에

자극을 받아 일어나도록 하자.

 

 

우리는 하느님의 빛을 향해

눈을 뜨고 주의를 다하여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시며

훈계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니,

 

"그분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하시고,

 

’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신 바를 들어야 한다." 고 하신다.

그러면(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아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듣거라.

주님의 두려우심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너희는 빛이 있는 동안에 달려,

죽음의 암흑이 너희를 덮치지 않도록 하여라."

 

 

주께서 이 말씀을

백성의 무리에게 외치시고

그들 가운데서 당신 일꾼을 찾으시며,

 

"생명을 원하고

좋은 날들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냐?"

고 말씀하신다.

 

만일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저로소이다." 라고 대답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만일 네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거든,

네 혀는 악을 피하고

네 입술은 거짓된 말들을 삼가라.

사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아서 뒤따라가라." 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이대로 행한다면

내 눈은 너희를 바라보고

내 귀는 너희의 기도를 들을 것이며,

 

"너희가 나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있노라" 고 말씀하실 것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아,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보다

우리에게 더 반가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보라,

주께서 당신 자애로써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신앙과 선행의 실천으로 허리를 묶고

복음 성서의 인도함을 따라

주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우리를 당신 나라로 부르시는

주님을 뵈옵도록 하자.

 

 

만일 우리가

그분 나라의 장막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선행으로 달리지 않고는

결코 그 곳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지옥으로 이끄는

쓰고 나쁜 열정이 있듯이,

 

악습에서 분리시켜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좋은 열정도 있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랑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복종하고,

아무도 자기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 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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