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글나눔

본문 바로가기


노비따스 음악중고등학교의 교장신부님과 후원회원님들이 글로 나누는 공간입니다.
묵상, 일상의 깨달음 등 사랑의 글들을 많이 나누어 주세요.​

 

2019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비따스음악학교 작성일19-08-08 09:47 조회35회 댓글0건

본문

 

복음 마태 16,13-23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미국의 유명 배우 릴리 톰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생쥐들끼리 치열하게 싸워 승리한들 생쥐는 결국 생쥐일 뿐이다.”

이 글을 보고서 옛날의 일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딱지치기했는데 제가 친구들의 딱지를 다 딴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딱지가 생겼고 친구들은 이런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저 역시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자랑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면서 호되게 혼났습니다.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럽겠지만, 어른의 눈에는 정말로 쓸데없는 모습이며 한심한 모습일 것입니다. 앞서 릴리 톰린의 말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후의 승리자 생쥐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존경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대로 구별도 하지 못할 것이고, 그저 조금 힘센 생쥐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의 인간 모습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고 승리하고 남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까? 마치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나를 인정하고 특별 취급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 안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 앞에서 그렇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것은 유일하게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그렇게 많은 죄와 잘못을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구한 사랑만이 유일한 특별함입니다.

이 특별한 사랑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맞추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 맞추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뜻에 온전하게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심으로써 당신께서 참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는 질문은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온전하게 고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대한 정답은 베드로가 발표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정답이 그를 장차 교회의 근본인 바위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차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말씀에 베드로는 반박하지요. 주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교회의 반석’이라는 호칭에서 ‘사탄’이라는 호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길을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사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난과 죽음까지 선택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집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걸림돌이 아닌, 주님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a4120a887f9ae13e9d294296eb0b3528_1565224
오늘은 성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어떤 분이셨는지 공부해 볼까요~~~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스페인 북부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도미니코 사제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도미니코는 어느 곳을 가거나, 누구와 함께 있거나, 항상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을 했다.

그는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세속을 하찮게 여기도록 이끌었다.

어디에서나 그는 말과 행동으로 복음의 사람다운 모습을 보였다.

낮에는 형제들과 동반자들 사이에서 그만큼 다정한 사람이 없었으며,

밤에는 그만큼 온전히 밤을 새우며 기도하고 온갖 탄원을 바치는 데에 몰두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미니코의 시성을 위한 움직임은 1233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공식적인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그를 아는 사람 9명이 볼로냐에 소환되어 증언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도미니코가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던가를 상상할 수 있으며,

그들의 증언은 초기의 다른 증거들로써도 확인된다.

그들의 증언에 초기의 다른 증거들을 보충하면,

도미니코가 얼마나 명랑하고 붙임성있는 사람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열렬히 기도했었다는 증언을 누누이 듣게 된다.

그는 흔히 밤새도록 기도하곤 했는데, 때로는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의 신음소리와 울음소리에 형제들이 잠을 깨기도 했다. 참으로 그는 쉽게 감동했다.

그는 전례 중에, 또는 스스로 설교할 때에도 곧잘 흐느껴 울곤 했다고 많은 증인들이 보고했다.

 

역사에 나타난 도미니코의 전성기의 모습은 친근하고 사랑스럽고,

남들과의 관계에서 솔직한 사람이면서도 무언가 결정할때는 단호하고,

교회와 복음의 진리에 열렬하고 헌신적인 사람이며, 아울러 여러 가지 운동이나 공식적인 교회의

한계선 너머에 있는 참 가치들에 대해서는 민감한 사람이였다.

그는 분명히 괄목할 만한 용기의 사람이었으나, 나약하고 수줍은 사람들을 위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동료 한 사람은 "나는 내가 그렇게 좋아할 만큼 하느님께 봉사한 사람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는 일찍이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더 영혼 구원에 대하여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라고 증언했다.

 

 

또 다른 이가 증언한 바와 같이 "그는 부자나 가난한 이나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다

도미니코의 후계자가 된 복자 삭소니의 조르단은 도미니코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는 언제나 꿋꿋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성격은 연민이나 동정심으로 마음이 움직일 때 외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성격이었다.

"기쁜 마음은 얼굴 표정을 기쁘게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도미니코는 인자하고 기쁜 표정을 통하여 자기 영혼의 평온을 드러내 주었다.

 

만일 하느님의 빛을 받아 무엇인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그 목적에 매우 항구하며, 충분히 숙고한 후에 공식으로 발표한 어떠한 결정도

좀처럼 변경하지 않았으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좋은 양심의 표시라 할 크나 큰 기쁨이 빛났기 때문에

"그의 밝은 얼굴 빛이 무색해 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는 쉽게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이 그를 보자마자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든지, 누구의 집에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있든지,

혹은 제후들이나 고위성직자나 그외 중요 인사들과 사귀든지간에

그는 언제나 영감적인 언어 구사가 풍부했고 유익한 일화가 넘쳐 흘렀으며,

어디에 있든지 말로도 행동으로도 복음의 사람임을 보여 주었다.

 

그가 선종했을 때 형제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파했으나,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많은 도움을 주겠다던 그의 약속을 굳게 확신했다.

13세기의 한 설교가는 도미니코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실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으며,

그후 수세기 동안 남녀 도미니코회원들은 똑같은 신념으로 한결같이 그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도미니코의 이 세상 생애는 1221년 8월에 끝났으나, 남녀 수도자의 마음속에 그에 대한 기억은 살아 있다.

세상도 비록 그것이 그의 목소리인 줄을 모른다 하더라도 예나 다름없이 오늘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말한 바와 같이

"도미니코의 설교하는 목소리는

그의 제자들의 설교 속에서 오늘에도 여전히 들려오고, 앞으로도 계속 들려올 것이다."

 

도미니코가 생전에 시작한 위대한 이상은 교회 내 많은 남녀에게 전해졌을 뿐 아니라,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성 토마스 아퀴나스,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 성 대 알베르토,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피렌체의 성 안토니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성 빈첸시오 페레르, 복된 프라 안젤리코, 사보나롤라, 교황 성 비오 5세, 리마의 성녀 로사,

바르톨로메오 데 라스 카사스,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빗지루 수사),

아시아의 수백명의 순교자들 그리고 세상과 교회의 생활과 사상과 신심에

여러 가지로 나름대로 영향을 끼친 많은 사람들의 업적을 통해서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 멀리까지 전파되어 왔다.

(도미니코수도회홈에서www.opkorea.org)

 

 

a4120a887f9ae13e9d294296eb0b3528_1565224
오늘이 벌써 입추입니다.

시원한 가을 바람에 코스모스의 흔들거림을  상상하면서

조금만 더 참기로 해요

 

물 자주 마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